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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정부의 ‘디지털 우선주의’가 행정 접근권에 미치는 영향

읽는 시간 약 16분

전자정부의 디지털 우선주의가 행정 접근권에 미치는 영향과 과제

전자정부의 ‘디지털 우선주의’가 행정 접근권에 미치는 영향은 공공서비스가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반드시 살펴봐야 할 중요한 디지털 격차 문제입니다.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고, 각종 지원금을 신청하고, 세금을 납부하고, 행정정보를 확인하는 일까지.과거에는 행정기관을 직접 방문해야 했던 많은 업무를 이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행정서비스는 분명 큰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줄였고 행정 처리 속도와 편의성도 높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행정서비스가 디지털로 편리해질수록 모든 시민의 행정 접근성도 함께 좋아지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온라인 이용을 기본 경로로 만드는 과정에서 대면·전화·서면 등 다른 방법이 지나치게 축소된다면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장벽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전자정부의 발전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전환했는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도 누구나 필요한 행정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가입니다.

‘디지털 우선’과 ‘디지털만 가능’은 다르다

디지털 우선(Digital First 또는 Digital by Default)은 행정서비스를 설계할 때 디지털 채널을 중요한 기본 경로로 만드는 접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청서를 온라인으로 제출하고, 처리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필요한 증명서를 집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면 시민과 행정기관 모두에게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디지털 우선디지털 전용(Digital Only)은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디지털 우선은 온라인 서비스를 쉽고 편리하게 만들어 이용을 촉진하는 방향일 수 있습니다.

반면 디지털 전용에 가까워져 다른 접근 방법이 사라지면 디지털 환경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은 서비스 자체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영국 정부 역시 과거 digital by default 정책을 추진하면서 온라인 이용이 어려운 사람을 배제하지 않기 위한 Assisted Digital(디지털 이용 지원)을 함께 설계했습니다. 대면·전화 또는 중개 지원 등 다른 방식으로 디지털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입니다.

즉,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것과 모든 사람에게 디지털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행정서비스에서는 왜 이 문제가 더 중요한가

쇼핑몰 앱을 사용하기 어렵다면 다른 쇼핑몰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서비스는 다릅니다.

특정 증명서를 발급받거나 복지서비스를 신청해야 하는 경우 시민이 정부를 다른 사업자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특히 신청기한이 있는 행정서비스라면 접근 실패가 단순한 불편을 넘어 권리나 혜택을 제때 행사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지원제도 대상자가 됨

온라인 신청이 중심이 됨

본인인증 또는 신청서 작성에서 막힘

도움을 받을 대체 경로를 찾기 어려움

신청을 포기하거나 기한을 놓침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지원 대상인지 여부와 신청 시스템을 사용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입니다.

행정서비스의 디지털화에서는 이 둘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디지털 우선 행정이 확대될수록 공공기관 전자민원과 디지털 격차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행정 접근권을 막는 장벽은 하나가 아니다

디지털 행정에서 발생하는 장벽을 단순히 ‘스마트폰을 못 쓰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여러 단계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장벽: 접속

인터넷 연결이나 사용할 수 있는 기기가 필요합니다.

기기가 오래됐거나 네트워크 환경이 불안정하다면 서비스에 들어가는 것부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장벽: 인증

서비스에 접속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인증, 인증서, 앱 전환, 비밀번호 입력 등의 과정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장벽: 이해

행정용어와 신청 조건을 이해해야 합니다.

화면을 조작할 수 있는 것과 복잡한 행정정보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능력입니다.

네 번째 장벽: 작성

여러 항목을 입력하고 필요한 서류를 찾아 첨부해야 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장벽: 오류 해결

오류가 발생했을 때 무엇이 잘못됐는지 파악하고 다시 시도해야 합니다.

따라서 디지털 행정 접근성은 단순히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느냐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접속 → 인증 → 이해 → 작성 → 제출 → 오류 해결

이 전체 과정 가운데 하나라도 지나치게 어렵다면 실제 서비스 이용은 중단될 수 있습니다.

같은 온라인 서비스도 사람마다 난이도가 다르다

온라인 민원 하나를 처리하는 데 5분이 걸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군가는 가족이나 지인의 도움 없이는 완료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 차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상황발생할 수 있는 장벽필요한 보완
고령 이용자복잡한 화면·인증 과정쉬운 화면과 이용 지원
장애인보조기술과의 호환 문제웹·앱 접근성 확보
저소득층기기·통신환경 제약다양한 접근 채널
농어촌 주민연결환경·접근 거리 차이온라인과 지역 지원 병행
외국인언어·신원확인 문제다국어·대체 인증
디지털 초보자오류 대응 어려움전화·대면 지원

중요한 것은 이들을 모두 하나의 ‘디지털 취약계층’으로 묶어 같은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막히는 단계가 다르기 때문에 지원 방식도 달라야 합니다.

한국의 전자정부는 실제로 어떤 방향을 취하고 있을까

여기서는 한 가지를 정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전자정부 정책을 단순히 ‘모든 행정서비스를 온라인으로만 바꾸는 정책’이라고 표현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OECD의 2025년 한국 디지털정부 검토에서는 한국이 공공서비스 제공에 옴니채널(omni-channel)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웹이나 앱 하나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여러 접점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하고 채널 사이를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접근입니다.

더 중요한 내용도 있습니다.

OECD가 인용한 한국 전자정부법 관련 내용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경제적·지역적·신체적·사회적 조건 때문에 국민이 전자정부서비스에 접근하거나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 말하는 ‘디지털 우선주의의 위험’은 한국 정부가 무조건 디지털 전용 정책을 추진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디지털화가 빨라질수록 이러한 포용 원칙이 실제 서비스 현장에서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계속 확인해야 한다는 문제에 가깝습니다.

한국은 디지털정부 선도국이지만 격차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은 높은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와 전자정부 역량을 갖춘 국가입니다.

2026년 OECD Digital Government Outlook에서도 한국은 사람 중심 서비스 제공의 여러 영역, 특히 서비스 기준 설정과 채널 간 접근성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정부 수준이 높다는 것과 모든 시민이 동일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OECD의 한국 디지털정부 검토 역시 고령화와 사회경제적 격차로 인해 연령·지역·소득 등에 따른 디지털 배제 위험이 계속 존재한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일부 고령자와 농촌 주민이 고도화된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지점이 중요합니다.

디지털정부가 발전할수록 디지털 격차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행정서비스가 더욱 디지털화될수록 디지털 이용 능력의 차이가 행정서비스 이용 기회의 차이로 연결되지 않도록 별도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실제 디지털정부 정책의 방향은 행정안전부의 디지털정부 비전 및 전략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창구를 남겨두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여기서 또 하나의 함정이 있습니다.

“온라인이 어려우면 주민센터에 가면 되지 않을까?”

물론 대면 창구는 중요한 안전망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방문 자체가 어려울 수 있고, 농어촌에서는 행정기관까지 이동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직장인은 운영시간 때문에 방문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진짜 다중채널 행정은 단순히

온라인 + 오프라인

두 가지를 놓는 것보다,

웹 + 모바일 + 전화 + 대면 + 필요한 경우 보조인력

등 여러 방법을 서비스 성격에 맞게 연결하는 방향에 가깝습니다.

OECD 역시 디지털 시대의 공공서비스에서 인터넷 접근, 디지털 역량과 접근성을 함께 고려하고, 대면 제공과 디지털 접근 사이의 균형을 근거에 따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디지털 행정의 효율성에는 ‘시민이 쓰는 비용’도 포함해야 한다

온라인 전환은 행정기관의 비용과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효율성을 기관 관점에서만 측정하면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시민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입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 신청 절차가 복잡해 시민이 여러 번 실패하고 결국 상담센터에 전화해야 한다면, 행정기관 내부에서는 디지털 처리 건수로 기록될지 몰라도 이용자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서비스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디지털 행정의 효율성을 평가할 때는 다음과 같은 질문도 필요합니다.

처음 이용하는 사람도 완료할 수 있는가?

중간에 실패하면 이어서 진행할 수 있는가?

도움이 필요할 때 쉽게 사람에게 연결되는가?

같은 정보를 여러 번 제출하게 만들지는 않는가?

장애가 있는 사람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좋은 디지털정부는 행정기관의 처리 속도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행정을 처리하는 비용까지 줄여주는 정부여야 합니다.

‘사람의 도움’은 디지털정부의 실패가 아니다

모든 서비스를 완전 자동화해야 가장 발전된 전자정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행정문제에서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존재합니다.

영국의 Assisted Digital 정책에서도 온라인 서비스를 독립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대면·전화 또는 중개인을 통한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을 다뤘습니다.

이는 디지털화의 실패라기보다 디지털 서비스의 범위를 더 많은 사람에게 확장하기 위한 보완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빠르게 처리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더 포용적입니다.

행정서비스를 설계할 때 필요한 다섯 가지 원칙

앞으로 행정서비스의 디지털화가 확대될수록 다음 원칙이 중요해집니다.

첫째, 디지털을 편리한 기본 경로로 만들되 유일한 경로로 만들지는 않는다.

온라인 서비스 이용을 장려하더라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현실적인 대체수단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실제 이용자를 대상으로 테스트한다.

디지털에 익숙한 개발자나 담당자만 사용해보고 서비스를 출시해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다양한 연령·장애·디지털 숙련도를 가진 사람을 서비스 설계와 테스트에 포함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실패한 사람을 측정한다.

완료율뿐 아니라 어느 단계에서 사람들이 이탈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넷째, 채널을 서로 연결한다.

온라인에서 작성하다 막힌 사람이 전화나 대면 지원으로 이동했을 때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다시 시작하지 않도록 서비스 간 연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섯째, 접근성을 사후 보완이 아니라 설계 조건으로 본다.

서비스를 완성한 뒤 접근성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양한 사용자의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영국 정부의 디지털 서비스 기준에서도 접근성과 포용성은 잠재적인 이용자가 개인의 상황이나 능력, 접근 필요와 관계없이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원칙으로 다뤄집니다.

AI 행정이 확대되면 행정 접근권의 의미도 달라진다

앞으로는 단순한 온라인 민원을 넘어 AI가 행정정보를 안내하거나 개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찾아주는 방식도 확대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시민이 복잡한 제도를 직접 찾아야 하는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가 행정에 들어올수록 새로운 질문도 필요합니다.

AI의 설명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잘못된 안내를 받았을 때 누구에게 이의를 제기할 것인가?

디지털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같은 행정 기회가 제공되는가?

자동화된 판단과 인간 담당자의 역할을 어디에서 나눌 것인가?

OECD도 최근 한국 디지털정부에 AI를 적용할 때 공공가치와 포용성 등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다양한 이용자가 참여하는 서비스 설계와 사용성 검증을 강화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AI 행정 시대에는 접근성이 단순히 ‘웹사이트를 사용할 수 있는가’에서 더 나아가 ‘자동화된 행정 과정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고 행사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정부의 목표는 ‘온라인화’가 아니라 ‘접근 가능한 행정’이다

전자정부의 발전을 멈추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온라인 민원, 모바일 신분증, 전자문서, 데이터 연계는 행정서비스를 훨씬 편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OECD도 디지털 신원, 결제, 데이터 공유 등 디지털 공공 인프라가 포용적인 공공·민간 서비스 제공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디지털화 자체를 목표로 삼을 때 발생합니다.

100개의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시민이 실제로 끝까지 이용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자정부의 성과를 바라보는 기준도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행정서비스를 디지털화했는가?”에서
“디지털화 이후에도 누구도 행정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는가?”로.

디지털 우선은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우선이 곧 사람의 선택권을 없애는 디지털 전용을 의미해서는 안 됩니다.

기술을 잘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더 빠른 길을 제공하고, 기술 사용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다른 길을 남겨두는 것.

그것이 디지털정부 시대의 행정 접근권을 지키는 핵심입니다.

참고자료

UK Government, Government approach to assisted digital — 디지털 서비스를 독립적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한 지원 원칙

OECD, Digital Government Review of Korea — 한국의 사람 중심·포용적 공공서비스와 옴니채널 정책

OECD, Digital Government Outlook 2026: Korea — 한국 디지털정부 평가

OECD, Designing and delivering public services in the digital age — 디지털 포용과 공공서비스 설계 원칙

OECD, Digital public infrastructure for digital governments — 포용적 디지털 공공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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